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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륭한 작품을 남긴 작가보다 도전정신이 강했던 작가로 남고 싶다

갤러리 ORO 김일태 화백 | 2014년 01월호 전체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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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알아주지 않는다 해도 묵묵히 자신의 길을 개척하는 사람이 있다. 그만큼 힘들고 외로운 일이다. 국내 유일, 아니 세계 유일의 ‘금화(金畵)’를 그리는 김일태 화백이 그런 인물이다. 최근 그의 그림이 화제가 되며 뉴스를 장식하고 있는 데 반해, 김 화백이 정작 하고 싶은 이야기는 따로 있었다. 가슴 속에 담긴 그의 말을 풀어본다.
 
휘황한 갤러리 ‘오로(ORO)’에 들어서자 금빛으로 가득한 작품 때문에 눈이 부실 지경이다. 금화로 명명된 이 그림들의 소재는 진짜 ‘금(金)’이다. 김일태 화백은 미술을 전공한 경력이 없다. 또 이렇다 할 수상경력, 그러니까 국전이나 미술전 같은 경선에 참가해 수상을 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김 화백이 가진 소신은 누구보다 명확했다. 김일태 화백이 그림을 그리게 된 계기는 시를 쓰면서부터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아픔에 방에서 두문분출하며 수많은 자작시를 지었고, 그 후 미국으로 건너가 샌프란시스코 미술학교에서 취미로 그림을 접하다 자신의 재능을 뒤늦게 찾게 된 김 화백이다. 20년 전, 당시를 떠올리며 김 화백은 “미국에서 공부한 후 15년 동안 서양화를 그렸습니다. 그런데 미국에 있을 때 느낀 점인데, 서양화를 통해서는 한계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동양적이면서 새로운 소재를 이용한 무엇인가가 필요했습니다.” 라고 말하며 “그렇게 고민한 끝에 천연 소재 오일과 천연접착제 개발, 그리고 그림의 소재를 유화가 아닌 금으로 정하고 작품을 만들기 시작했던 겁니다. 유화는 시간이 흐르면 균열이 생기고 변색이 되는 단점이 있는데 반해 순금은 천년이 지나도 변질이나 변색을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대물림을 하더라도 변함이 없는 그런 소재죠.”라고 하며 소재를 금으로 택한 이유를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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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창적 소재 개발 위해 헌신하다

천연소재의 오일과 접착제를 사용해 금과 함께 사용했지만 불순물이 들어가면 곧 변질되었다. 캔버스의 온도와 가마에서 구워내는 48시간의 기법을 터득할 때까지, 꽃이 피고 신록이 우거지고 눈이 쌓이는 것을 반복하는 십년이라는 세월이 필요했다. 사업을 하며 모은 30억원의 큰 자금도 고스란히 금화를 위해 투자한 김 화백이었다. 그는 “금으로 작품을 만들기 시작하자 가슴 속에 열정이 뿜어져 나왔습니다.”라고 말을 꺼내며 “금을 이용해 만든 초기의 작품은 소재를 다루는 일부터 테크닉적인 면까지 지금 생각해보면 형편이 없었어요. 하지만 계속 다루다보니 금을 다루는 기술이 생겼고 금빛이 16가지 고유색깔을 내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같은 빛 같지만 금을 어떻게 활용 하느냐에 따라 그 빛이 달라요. 그 중, 동양인이 선호하는 색은 네 가지 색으로 혼합과 숙성과정을 거치며 그 시간에 맞는 금을 선택해 쓰면 원하는 빚을 찾을 수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김일태 화백의 초기 그림은 장미와 돼지, 말, 용, 거북이 등 대중적인  작품이었다. 그에 관해 그는 “솔직히 그런 작품을 그린 건 상업적인 면도 없지 않아 있었습니다. 그런데 작품은 많이 나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지금의 저를 있게 한건 나의 길을 걷는다는 소신이었습니다. 동양의 기법으로 서양화를 접목하는 그림에 매달렸습니다.” 라며 그간 말 못할 사연이 많았음을 암시했다. 그러나 최근 가수 싸이가 김일태 화백의 그림 6점을 미국으로 가져가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을 비롯해 미국 저명인사들에게 선물한 것이 계기가 되어 유명세를 치르고 있는 가운데, 배우 강수연, 장미희, 노주현, 배종옥, 태진아 씨 등, 저명인사와 상류층 인사들이 그의 그림을 알아보고 구매를 해 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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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계 풍토 바뀌어야 한다

하지만 김 화백이 하고자 했던 말은 그런 것들이 아니었다. 그동안 미술계가 그를 어떻게 대했는지에 관한 것과 현재 미술계의 현실적 문제에 관한 것들이었다. 김 화백은 이미 목소리가 커져있었다. 그는 “서양인들도 제가 그리는 그림의 소재가 금이라는 사실을 알고 그 기법과 그림에 신비함을 느끼는 모양입니다. 많이 놀라고 새로운 장르의 그림으로 인정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국내 미술계는 저에게 냉소적이죠. 그 이유가 뭔지 생각해 보셨습니까? 제가 미술을 전공하지 않았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인맥과 학연, 지연이 없으면 그림을 그리는 사람의 가치를 거들떠도 보지 않으려 해요. 그런 제가 제도권에 들어가고 싶겠습니까? 그래서 2002년 쯤, 미술계와 단절을 선언하고 ‘앞으로 어떤 평가도 비교도 하지 말아달라’고 했습니다. 저와는 가치관이 다른 사람들인 것 같습니다. 20년간 사재를 털어 연구했고 독창적인 소재와 그림을 그려온 사람에게 배타적으로만 대하려는 것에 질린 것입니다. 소위 예술을 한다고 하는 사람들이면 진정성이 있어야 하는데, 그것이 결여되어 있다는 것은 정말 아쉬운 일입니다.” 라며 그동안의 감춰뒀던 속내를 비췄다. 김일태 작가가 아쉬움을 가진 부분이 이런 것이었다. “가장 훌륭한 작품을 그린 화가보다 가장 투철한 도전정신을 지닌 작가로 평가받고 싶다”던 그의 말처럼 이런 소신 있는 작가정신이야말로 크게 평가받을 일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는 자신의 그림을 일컬어 가족의 사랑과 화목, 공경이 내 그림의 핵심 주제라고 설명했다. 앞으로도 금빛처럼 따스하고 행복한 그림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작가로 남아주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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