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지민 작가는 일상적 오브제들을 비일상적 맥락 속에 배치함으로써 초현실적 풍경을 만들어 익숙한 사물들을 낯설고 신비롭게 바라보게 한다. 함미나 작가는 어린 시절의 감정을 섬세하고 은유적인 방식으로 캔버스에 담아낸다. 미술관은 이들의 작업을 통해 잊힌 순수한 감수성을 상기하고 상상력을 일깨우는 자리를 마련한다.
1부 <기억의 풍경, 현실과 비현실 사이>는 채지민의 현실과 비현실 사이의 경계를 탐구하는 독특한 예술적 실험을 담고 있다. 그의 작품은 평면성과 공간감이 만들어내는 모순적 공존을 치밀하게 탐구한 결과물이다. 일상의 오브제들을 비일상적 맥락에 배치하여 관람객에게 낯선 감각과 경험을 제공하여 초현실적인 긴장감을 자아낸다.
작가의 창작 과정은 철저한 계획에서 출발한다. 작품에서 보이는 불안정한 구조물들은 사실 3D 디지털 툴(Tool)을 활용한 정밀한 스케치가 토대다. 각 작품에 등장하는 이미지들은 삶의 순간들을 담은 기억의 파편들로, 조형성에 따라 계획적으로 배치된다. 이러한 방식은 그의 작품이 단순한 시각적 표현을 넘어선 깊이를 가지게 만든다.
특히 ‘압도적인 벽’ 시리즈는 장식적 요소를 배제한 2차원 캔버스에 3차원적 공간감을 부여하여 강렬한 시각적 괴리감을 만들어 낸다. 화면 속 인물들과 인공 벽들은 예측 불가능한 거대함과 미지의 영역을 암시한다. 5전시실을 가로지르는 주황색 거대한 벽은 전시장 바깥과 복도로 삐져나와 있는데, 이는 <압도적인 벽 아래에서>(2025)의 일부다. 이 작품은 작가의 회화적 시도가 공간으로 확장된 형태로 색과 규모로만 존재하는 면 그 자체를 탐구하는 설치 작품이다. 이 거대한 벽 그 앞에는 정삼각형 호수에 빠져들어 가는 라바콘이 있고, 기울어져 어딘가 불편해 보이는 이 벽을 지나면 하늘에서 라바콘들이 떨어지고 너른 들판이 펼쳐진다. 작가는 이 미묘한 불편함과 무한한 풍경이 공존하는 공간에서 관람객에게 능동적인 해석과 개인적 모험을 요구한다.
2부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은 함미나의 유년 시절 바닷가에서의 경험과 기억을 담은 작업에서 시작된다. 작가는 작품 활동을 통해 자신을 치유하고 관람객에게 위로를 건네는 작업을 지속해 오고 있다. 그녀의 작품은 자전적 서사를 기반으로 하여, 일상적이지만 강렬하게 각인된 이미지와 감각—목소리, 체온, 소리, 냄새—등이 자연스럽게 녹아 있다. 이러한 기억들은 종종 그녀의 손끝에서 펜 도구를 통해 종이에 옮겨지며, 하나의 순간이 이미지로 확장된다. 작가의 어린 시절은 그녀에게 지속적인 영감의 원천이었다. 흐릿한 풍경과 모호한 기억은 그녀의 작품 속에서 감각적이고 생경한 형태로 재탄생한다. 특히 ‘숲’과 ‘숨바꼭질’ 시리즈에서는 꿈속 공간처럼 흐릿한 표상이 등장하는데, 이는 작가가 바라본 세상이나 강렬한 기억의 흔적을 반영한다.
<숲> 시리즈(2024)는 작가가 어릴 적 산딸기를 따러 다니고, 외할머니의 토마토밭에서 뒹굴던 행복했던 나날을 되감아 누구나 그리워할 법한 장면들을 표현한다. 관람객은 작품으로 둘러싸인 숲을 거닐다 보면 그 안에서 평온한 아이들의 미소와 함께 안식처를 먼저 발견하게 된다. 한편 <숲> 시리즈에서 아이들은 토마토 숲과 레몬 숲을 지키는 요정과 수호신의 모습으로 등장한다. 함미나 작가는 과일을 먹고 즐거워하거나 한껏 놀이에 빠진 아이들의 모습과 함께 다양한 모습들을 보여주려 시도하고 있다. 이를 통해 작가는 환상과 현실 혹은 무욕과 욕심, 이 양가적인 감정과 기억을 고스란히 캔버스에 담아낸다.
함미나의 작업은 단순히 과거를 회상하는 데 그치지 않고,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며 치유와 성찰의 공간을 만든다. 그녀는 자신의 어린 시절 경험을 통해 관람객들에게도 유년기의 순수함과 몰입감을 되찾을 수 있도록 이끈다. 작품 속 흐릿하고 모호한 형상들은 관람객들에게 자신의 기억과 감정을 투영할 여지를 제공하며, 현실과 상상의 경계를 넘나들게 한다. 그는 보이는 그대로가 아닌 느껴지는 감정을 그린다.
수원시립미술관 남기민 관장은 “일상의 무게에 지쳐있다면 두 작가의 작품 앞에 잠시 멈추어 서서 잠재된 보석 같은 순간들을 기억해 보길 바란다”라고 밝혔다. 김성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