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전시는 서울시립미술관의 대표 소장품인 가나아트컬렉션을 2026 전시 의제인 ‘기술’을 통해 재조명하며, 기술 발전이 바꾼 사회 풍경과 그 이면의 상황들을 입체적으로 조망한다. 한국의 산업화는 기술의 발전과 함께 가속 성장했고, 개인과 공동체는 새로운 체계와 구조 속에서 재편되었다. 이번 전시는 기술 변화가 이끈 1970~90년대 산업화와 도시화, 매체 환경의 변화 속에서 형성된 한국 사회의 풍경을 살펴보고, 기술 발전과 함께 변화해 온 사회구조와 그 속에서 형성된 인간의 삶과 감각을 탐색한다.
당대 사회 현실에 주목한 작가들은 기술 발전 과정에서 드러난 사회적 긴장과 변화를 포착하며, 산업화 시기 한국 사회의 주요 장면을 작품으로 제시한다. 기술 발전은 시각이미지 환경에도 변화를 이끈다. 인쇄술, 사진술, 미디어 등의 기술 문화를 기반으로 이미지 환경이 형성된다. 작가들은 이미지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감각을 회화언어로 전환하며 시대를 드러내는 시각적 형식으로 표현한다.
세 개의 섹션으로 구성된 이번 전시는 공동체의 ‘균열’ ‘재편’ 그리고 개인의 ‘내면’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섹션 1. <흔들리는 불빛 사이로>는 산업화와 도시화의 전환기 속에서 농촌에서 도시로 이동하며 삶의 토대와 공동체가 흔들리던 상황들을 주목하며, 급격한 산업화와 도시화가 진행되던 전환기의 ‘사회적 균열’을 포착한다. 섹션 1에 전시되는 이종구 작가의 <국토 – 고추모종>(1990)은 기술과 자본이 농촌 공동체에 균열을 야기한 양상을 드러내며, 이명복 작가의 <식사>(1988)는 화려한 샹들리에 아래 만찬 장면과 황폐한 산동네를 병치해서 산업화와 경제성장의 그늘과 사회적 계층의 분열을 드러낸다.
섹션 2. <새로운 질서의 심연>은 기술과 자본의 결합 속에서 새롭게 형성된 사회구조의 관계들을 응시한다. 산업화로 성장한 도시문화와 매체 환경은 물질적 번영 속에서 사회 질서와 가치 체계를 재구성했다. 화려한 현실 이면에는 소비주의와 대중매체가 만들어낸 욕망과 경쟁, 권력과 자본의 논리가 교차하며 보이지 않는 긴장을 드리운다.
신제남 작가의 <인간회귀>(1984)는 기술문명의 시대상을 은빛 환상으로 구상하고, 박불똥 작가의 <돈쟁>(1991)은 군사, 정치, 자본이 얽힌 현대사회의 장면을 담은 잡지 사진을 몽타주하여 기술문명과 자본주의가 얽힌 현대사회의 현실을 비판적으로 재현한다.
섹션 3. <찬란한 공허>는 기술문명이 만들어낸 물질적 풍요의 표면 아래에 스며있는 공허와 소외의 감각을 들춰내며 인간 존재의 의미를 다시 질문하고, 거대 시스템의 표면 아래에 억눌린 채 축적되는 개인의 피로와 공허를 조명한다.
신학철 작가의 <부자>(1981)는 폐기물로 형성된 아버지와 순수한 아이의 대비를 통해 기술문명이 인간에게 초래한 물질적 공허와 물질에 잠식되지 않는 인간의 가능성과 희망을 함께 다룬다. 나아가 2000년대 이후 기술 환경의 변화와 사회관계를 탐구한 김세진 작가의 뉴미디어 작업, 이원철 작가의 사진, 박은태 작가의 회화 작품은 1980년대 제기한 기술을 둘러싼 문제의식이 동시대까지 확장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최은주 서울시립미술관장은 “이번 전시는 기술 발전의 이면에서 변화해 온 인간의 삶과 감각을 되짚어보고, 과거의 기술 풍경을 통해 오늘날 우리가 마주한 기술문명의 의미를 새롭게 사유하는 자리”라며, “기술시대 예술의 역할을 재고하고, 동시대를 바라보는 시각을 확장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라고 말했다. 김성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