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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다움의 조건

<사랑의 기원>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 | 2026년 07월호 전체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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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립미술관은 서울시립 난지미술창작스튜디오 개관 20주년 기념 기획전 <사랑의 기원>을 4월 30일부터 9월 6일까지 서소문본관 2, 3층 전시실과 크리스탈 갤러리에서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난지미술창작스튜디오를 거쳐 간 역대 입주 작가들 중 17명(팀)의 사진·설치·영상·조각 등 60여 점의 작품을 통해 기술이 삶의 조건이 된 동시대 환경 속에서 인간의 본성과 예술적 창조성이 어떻게 지속되고 변화하는지를 탐구한다. 

<사랑의 기원>은 고전 신화와 설화, 연극적 서사에서 반복되어 온 ‘이야기의 원형’을 동시대 기술 환경과 접목하여 재구성하며, 프로메테우스 신화, 레테의 강, 영웅 서사 등 고전적 내러티브를 참조하고, 이를 동시대 기술 환경 속에서 다시 쓰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또한, SF적 상상력과 포스트휴먼적 관점을 경유하여 인간 존재를 재사유하며, 기술 이후에도 지속되는 인간의 정동과 관계 맺기의 방식에 질문을 던진다. 

전시는 크게 네 개의 서사로 구성된다. ‘훔친 불꽃’은 기술과 신체의 결합, 감각의 확장과 변형을 다루고, ‘망각의 강’은 기억과 데이터, 생명과 보존의 문제를 탐색한다. ‘낯선 귀환’은 시스템 바깥의 존재와 비규범적 삶, 시스템이 미처 포착하지 못한 존재들의 분투를 호출하며, ‘기원으로’는 기술 시대의 인간성, 그리고 사랑이라는 정동이 머물 자리를 묻는다.

전시의 도입부인 ‘훔친 불꽃’에서는 창조와 기원의 서사를 퀴어적 관점에서 새롭게 써 내려간 듀킴의 커미션 신작 〈다육복음서〉(2026), 이상적 낙원과 데이터의 풍경이 겹쳐지는 정희민의 신작 회화 〈아르카디안 더스크〉(2026)가 공개된다. 윤지영의 봉헌물 연작 〈Ex-voto: Two Ears〉(2025)와 〈Ex-voto: Missed〉(2025)는 국내에서 처음 선보이는 작업으로, 2층과 3층 전시실에 나뉘어 놓인다.

‘망각의 강’에서는 인체 냉동 보존과 생명보험사, 유족이 벌이는 숙론을 따라가며 죽음의 ‘완전한 보장’에 대해 질문하는 강우혁의 신작 영상 〈왜 날 위한 계획을 세우지 않은 거죠?〉(2026)와, 인류 최초의 화석 루시와 스마트폰을 결합하여 기술·인류·언어의 교차 지점을 사유하는 김현석의 〈LUCY 1.0〉(2024/2026)이 새롭게 재제작되어 선보인다. 실제로 목격한 장면과 스크린을 경유한 이미지 사이의 거리를 추적해 온 정영호는 픽셀이 드러나는 신작을 공개하며, 암실에서 현상한 또 다른 신작은 ‘낯선 귀환’에 이어진다.

‘낯선 귀환’에서는 시스템에 포착되지 않는 존재들의 움직임을 어린이와 청소년 퍼포머의 댄스 필름으로 구현한 김예슬의 커미션 신작 〈오프비트〉(2026), 역사 속으로 사라져가는 직업을 가진 수필 속기사와 윷놀이 명인이라는 두 인물의 인터뷰를 교차 편집한 신정균의 영상 신작 〈가장 빠른 말과 느린 손〉(2026)이 공개된다. 또한 이베타 강선영의 〈자유낙하무리〉(2024/2026)는 서소문본관의 공간적 맥락에 맞춰 재창작된 설치와 함께, 전시 기간 중 총 6회의 정기 퍼포먼스로 관객과 만난다.

에필로그에 해당하는 마지막 파트 ‘기원으로’는 세 개의 여정을 모두 통과한 관람객의 사유와 발걸음으로 채워진다. 전시장 문을 나서는 행위 자체가 전시의 마지막 장을 여는 구성으로, ‘사랑’이라는 인간 본성의 가치가 각자의 일상 속에서 어떤 무게로 자리 잡을지 질문하며 전시의 서사를 현실의 시간으로 확장시킨다.

전시는 고정된 관람의 형식을 넘어, 기간 중 정기적으로 진행되는 이베타 강선영의 장소특정적 퍼포먼스를 비롯해 관객 참여형 워크숍, 기초과학연구원(IBS)과 협력하여 예술×과학이 교차하는 대담, 다학제 강연 시리즈 등으로 구성되며 전시 기간 중 순차적으로 운영된다. 자세한 내용은 추후 서울시립미술관 홈페이지 및 미술관 SNS 채널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최은주 서울시립미술관장은 “<사랑의 기원>은 동서양의 신화와 설화, 이야기의 원형 위에 동시대 작가들의 언어로 인간다움의 조건을 다시 묻는 자리”라며 “난지미술창작스튜디오를 거쳐 간 작가들의 시간이 한자리에 모인 만큼, 다변화하는 기술 환경 속에서 우리가 서로에게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각자의 속도로 따라가 보시기를 바란다”라고 말했다. 김성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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