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한 흐름을 이어 2026년에는 ‘계단 위, 잠시 쉼’이라는 부제로, 많은 관람객이 오가는 대극장 계단 공간을 메인으로 새로운 전시를 선보인다. 대극장 계단은 공연 전후의 기대와 여운이 교차하는 장소로, 관객이 잠시 머무는 동안 감각을 환기할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이번 전시는 이러한 공간적 특성에 주목해, 공연장 일상 공간 속에서 예술을 통해 ‘쉼’을 경험할 수 있는 새로운 방식을 제안한다.
이번 전시는 권여현, 변연미 두 작가가 참여한다. 권여현은 한국 동시대 회화를 대표하는 작가로, 회화를 중심으로 사진, 영상, 퍼포먼스 등 다양한 매체를 넘나들며 인간의 감각과 정서, 존재 인식의 방식을 지속적으로 탐구해 왔다. 그의 작업은 철학적 사유와 대중적 이미지, 신화적 장면을 결합해 동시대 시각 환경 속에서 우리가 무엇을 보고, 어떻게 느끼는지를 다시 질문하게 한다.
권여현의 작품으로는 최신작 <내가 사로잡힌 철학자들> 1점과 <낯선 곳의 일탈자들> 시리즈 4점 등 총 5점을 만나볼 수 있다. <내가 사로잡힌 철학자들>은 프로이트, 브랑쇼, 아감멘, 들뢰즈, 칸트, 베르그손, 스피노자, 가타리, 니체 등 현대 철학자들을 주제로 그린 연작 회화 시리즈이다. 권여현 특유의 자유로운 붓질과 밝은 색채, 간결한 제스처를 통해 디지털 정보가 과잉된 현 시대에서 ‘감각이 다시 깨어나는 순간’을 회화적으로 표현하였다.
특히 <낯선 곳의 일탈자들>은 권여현의 대표적인 작품 시리즈로, 꿈과 현실이 교차하는 이질적 공간을 통해 자유를 찾는 존재들의 모습을 철학적이고 신화적인 상상력을 담아 표현한 것이 큰 특징이다. 익숙한 장소를 낯설게 전환함으로써 관람객이 공간 속에서 자신의 시선과 위치를 인식하도록 유도한다.
프랑스를 중심으로 활동해 온 변연미는 자연이 지닌 생명력과 그 안에서 경험되는 감각의 흐름을 회화적 언어로 풀어내며 자신만의 작업 세계를 구축해 온 작가다. 숲, 나무, 꽃 등 자연의 이미지를 출발점으로 삼되, 이를 재현하는 방식에 머무르기보다 신체적 감각과 시간의 흐름을 회화로 확장해 왔다.
숲을 주제로 한 초기 작업에서는 강렬한 밀도와 생명력을 드러냈다면, 최근의 꽃 연작에서는 보다 자유롭고 유기적인 붓질을 통해 감정과 감각의 변화를 표현한다. 색채와 화면 구성은 고정된 이미지보다는 흐름과 움직임에 주목하며, 관람객이 감각적으로 작품을 인식하도록 한다. 자연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자연을 통해 ‘존재가 느껴지는 순간’을 기록하는 행위에 가깝다고 표현할 수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변연미를 대표하는 숲 시리즈 3점과 꽃 시리즈 4점 등 총 7점을 선보인다.
두 작가의 작업은 대극장 계단이라는 유동적인 공간과 결합해, 정적인 감상과 이동의 경험이 공존하는 관람 환경을 형성한다. 이번 전시는 별도의 관람 동선이나 입장 절차 없이 누구나 자유롭게 관람할 수 있다. 미술관 중심의 전시 형식을 벗어나 공연장이라는 일상 공간에 미술을 배치함으로써, 예술 접근성을 높이고 시민의 문화 경험을 확장하고자 한다.
세종문화회관 안호상 사장은 “이번 전시는 공연 전후의 일상적인 순간 속에서 예술을 자연스럽게 경험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고자 기획했다. 관객들이 의도하지 않은 순간에 예술을 마주하며 또 다른 감각의 문화 경험을 갖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이어 “앞으로 이러한 전시 기획을 공연장에 국한하지 않고 옥상 등 다양한 공간으로 확장해, 세종문화회관 전체가 하나의 예술 공간으로 작동하는 모델을 만들어가겠다”며 “예술이 시민의 일상에 더욱 가까이 다가갈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소통해 나가겠다”고 덧붙였다. 김성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