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원(李大源, 1921–2005)은 ‘화단의 신사’, ‘색채의 마법사’,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화가’라는 수식어와 함께 과수원과 산, 연못을 원색의 점과 선으로 채운 작품으로 익히 알려져 온 작가로 밝음이 작가의 타고난 낙천성으로 해석 되어왔다. 전시 제목인 ‘당신을 슬프게 하는 것은 하나도 없다’는 “사람을 슬프게 하는 것은 하나도 없다”라는 고고미술사학자 김원룡(1922-1993) 박사의 그림평에서 차용하였다. 이번 전시에서는 생동감 넘치고 명랑한 색채가 작가의 기질 때문이라는 해석을 넘어 한국의 전통 공예와 동양화의 조형 원리를 오래 연구하고, 화면 안에서 변용해 얻은 작가의 회화적 성취임을 새롭게 조명한다. 총 4부로 구성된 전시는 이대원의 학창 시절 초기 작품부터 말년의 대형 〈농원〉 연작에 이르기까지 유화 120여 점과 아카이브 100여 점, 작가수집 고미술품 및 자료를 통해 약 70년에 거친 그의 화업을 총체적으로 살펴본다.
작가로서의 이대원은 당대 서구 미술의 유행을 따르기보다 자수와 나전, 화각 등 전통 공예의 색과 빛, 동양화의 운필과 기법을 유화의 언어로 새롭게 풀어냈다. 색점과 색선, 색면을 거듭 쌓아 올리며 ‘한국적인 현대 회화는 어떻게 가능한가’라는 질문을 평생 탐구한 화가이자 문화적 지식인으로 한국 근현대 미술계의 기반을 만들었다.
또한 1959년부터 약 8년간 한국 최초의 상업 화랑 격인 반도화랑을 운영하며 척박한 국내 화랑가의 기틀을 마련하였고, 5개 국어에 능통한 당대 유일한 지식인으로서 박수근, 장욱진, 김기창, 김환기, 유영국 등의 작품을 소개하며 한국 미술을 해외에 알리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1960년대 후반에는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초대 학장과 대학 총장으로 미술교육의 토대를 다졌으며, 대한민국예술원 회장과 외교통상부 문화홍보대사 등을 맡아 지속적으로 한국 미술을 알리는 것에 힘썼다.
이처럼 본인의 작품 활동을 지속하면서도 전시와 교육, 문화행정과 문화외교를 아우르며 한국 미술계의 여러 영역을 연결했고, 평생 공공의 가치를 자신의 창작만큼이나 중요한 책무로 여겼다. 이대원은 한국 미술사에 있어 단순한 풍경화가가 아닌, 삶과 예술이 하나였던 현대의 지식인 화가이자 전통 문인의 정신을 현대 회화 속에서 실천한 예술가였다.
1부 “배우되 갇히지 않다”는 1930년대부터 1950년대까지 이대원이 화가로 형성되어 간 시기를 살펴본다. 청운공립보통학교 때 처음 유화를 접한 그는 경성제2고등보통학교에서 미술교사 사토 구니오(佐藤九二男, 1897-1945)를 만나 서양미술과 조선 공예를 함께 배웠다. 조선미술전람회 공예부, 서양화부에서 모두 입선하며 공예와 회화 양쪽에서 재능을 인정받았다. 1부에서는 이대원, 장욱진, 유영국을 가르친 사토 구니오의 희귀 회화 〈설정(雪庭)〉(연도미상)을 국내 최초로 공개한다. 조선풍경, 민예품 등을 그린 사토 구니오의 여러 드로잉과 함께 이대원의 초기작을 동시에 선보여 맑은 색면과 단순화된 형태, 공예에 대한 관심이 스승과 제자 사이에서 어떻게 이어졌는지를 살펴본다. 아울러 이전까지 〈북한산〉(1938)으로 알려졌던 초기작의 원제가 〈가을 산〉(1938) 이었음을 새롭게 밝힌다. 한편, 1957년 미국과 유럽의 미술 현장을 경험한 뒤 제작한 작품을 통해 서구 모더니즘을 직접 마주한 작가의 치열한 고민을 조망한다.
2부 “이어가되 휩쓸리지 않다”는 195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앵포르멜이 확산하던 시기에도 이대원이 유행에 편입되지 않고 한국적인 조형 언어를 모색한 과정을 살펴본다. 또한 1959년부터 약 8년간 이대원이 운영했던 반도화랑 운영과 관련된 희귀 자료 등을 통해 이대원이 화가이자 경영자로서 한국 미술을 어떻게 매개했는지 살펴봄과 동시에 작가가 소장했던 자수·나전·화각·목가구, 변관식의 산수화 등을 회화와 함께 전통 공예와 동양화의 원리가 그의 화면으로 이어지는 과정을 보여준다.
3부 “쌓아 올리니 자유롭다”는 197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색점·색선·색면을 거듭 쌓아 올리며 독자적인 회화 언어를 완성해 가는 과정을 살펴본다. 이대원은 전통 회화의 준법과 수지법, 태점과 적묵법을 연구하고 이를 유화의 붓질 안에서 새롭게 변용했다. 파주 농원을 오랫동안 관찰하며 제작한 〈농원〉(1987), 〈산〉(1978), 〈나무〉(1983)를 통해 ‘산수에서 풍경으로’가 아니라 ‘풍경에서 다시 산수로’ 나아간 이대원의 회화 세계를 조명한다.
4부 “사람을 슬프게 하는 것은 하나도 없다”는 평생 축적한 색과 빛의 언어가 대형 회화로 완성되는 말년의 작품을 선보인다. 평생 축적한 색과 빛의 언어가 5미터가 넘는 대작들에서 자유롭게 펼쳐지며 〈과수원〉, 〈사계절〉 연작, 〈인왕산〉 등을 통해 풍경에서 산수로 확장된 그의 회화 세계를 보여준다. 대형 작품들과 바닥의 반사면으로 구성된 전시 공간은 관람객에게 마치 농원에 둘러싸인 듯한 몰입감을 선사할 것이다.
김성희 국립현대미술관장은 “이대원은 한국 미술을 전시하고 가르치며 세계에 알리는 기반을 다지는데 크게 기여한 문화적 지식인이자, 자신의 회화에서는 한국적인 현대 회화의 가능성을 평생에 걸쳐 탐구한 화가”라며, “이번 전시를 통해 그간 충분히 조명되지 못했던 이대원의 미술가적 위상을 새롭게 자리매김하고, 한국 현대회화의 중요한 성취를 다시 바라보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김성우 기자